이미지출처: 무신사
2026년 5월 20일, 무신사가 다시 공식 사과문을 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2019년이었습니다. 이미 세 차례 공식 사과를 했고, 대표가 직접 유가족을 찾아갔으며, 전 직원 역사 교육까지 진행했습니다. 이쯤이면 충분히 마무리된 사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무신사는 왜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개를 숙였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려면 오늘 이 사과가 어떤 맥락 위에서 쓰였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미지출처: 스타벅스 (스타벅스 탱크데이)
불씨는 다른 곳에서 왔다
이 사과문이 나오기 이틀 전인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그 홍보물에 담긴 문구였습니다. '탱크데이', '책상에 탁!'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계엄군의 탱크를 연상시키는 이름과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해명("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판촉 행사에 버젓이 등장한 것입니다.
여론은 즉각 들끓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에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사태 당일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하지만 불매 움직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터진 직후, 대통령은 무신사의 2019년 양말 광고 이미지를 엑스(X)에 공유했습니다. 광고 속 문구는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박종철 열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이미 받은 바 있는 그 광고였습니다. 대통령은 "사실이라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고 덧붙였습니다.
7년 전 덮어뒀다고 생각했던 불씨가, 다른 기업의 실수로 인해 다시 타오른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노컷뉴스 (무신사 '책상에 탁' 카드뉴스)
'과거의 잘못'이 현재로 귀환하는 방식
디지털 환경에서 인터넷은 망각하지 않습니다. 어딘가의 서버에, 누군가의 스크린샷 폴더에, 혹은 커뮤니티의 아카이브에 잘못은 지워지지 않고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하게 살아있는 순간, 잠든 것들은 다시 깨어납니다.
이번처럼 유사한 맥락의 사건이 터졌을 때 과거의 사례가 소환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소비자의 기억은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비슷한 감정의 결이 자극되면, 뇌는 연관된 기억을 끌어올립니다. 스타벅스의 '책상에 탁'이 무신사의 '책상을 탁쳤더니'를 소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문장은 같은 역사적 사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신사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미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도 세웠는데, 다른 기업의 실수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가 다시 조명되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이 지점에서 무신사가 선택한 방식이 중요합니다. 침묵하거나, "이미 사과했다"고 방어하거나, 혹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거나 세 가지 선택지 중 무신사는 마지막을 택했습니다.
이미지출처: 경향신문 (2024년 5·18민주화운동 전야제에서 진행된 민주대행진)
기업의 역사 감수성은 왜 이렇게 자꾸 실패하는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와 무신사의 '탁쳤더니 억하고'. 두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실수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같은 곳에서 자랍니다. 마케팅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을 감지하는 감수성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이는 단순히 특정 직원의 무지나 부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케팅이라는 영역이 구조적으로 속도와 자극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눈에 띄게' 이 두 기준이 콘텐츠 제작의 핵심 축을 이루는 환경에서, '이 문구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연상시키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립니다.
더구나 현대의 마케팅 팀은 수십 개의 채널을 동시에 운영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쇼츠, 카카오톡 채널, 뉴스레터, 오프라인 광고물 각 채널마다 다른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져야 합니다. 이 속도전 안에서 역사적 감수성을 모든 산출물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무신사가 이번 사과문에서 '다중 검수 체계'를 언급한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면, 2019년 이후 무신사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7년간 무신사는 이 부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미지출처: 나이키 (NFL에서 인종차별에 저항해 무릎을 꿇은 콜린 캐퍼닉)
사과 대신 먼저 입장을 내세운 브랜드들 — 해외의 다른 선택
한국 기업들이 역사적 실수 앞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논란이 생기면 침묵하거나, 압력이 가중되면 사과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어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수동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조금 다른 방정식이 작동해 왔습니다.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입장을 가지는 방식입니다.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기업이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내고 그 메시지를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전략입니다.
나이키의 2018년 캠페인은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에 저항해 NFL 경기 전 국가 제창 시 기립을 거부하며 무릎을 꿇은 선수 콜린 캐퍼닉을 'Just Do It' 30주년 광고의 메인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지라도 무언가를 믿어라"는 문구와 함께였습니다.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이 #boycottnike 해시태그와 함께 퍼져나갔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분명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광고 공개 후 나이키의 온라인 매출은 단기간에 급등했고, 젊은 소비자층의 지지를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이스 메트릭스의 당시 조사에 따르면, 광고를 본 젊은 세대 소비자의 56%가 나이키에서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응답했습니다. 나이키는 이미 이전 캠페인에서도 에이즈, 성불평등, 장애 등 민감한 사회적 의제를 광고에 담아온 브랜드였습니다. 이번 선택 역시 그 일관된 흐름의 연장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와 광고 메시지가 서로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 확신이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된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파타고니아 (뉴욕타임즈에 실은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
파타고니아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을 증명했습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모든 브랜드가 '사라, 사라, 더 사라'를 외치던 그 날 뉴욕타임즈 전면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쇼핑 시즌 자체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매출 40% 급증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철학을 구매한 것입니다. 파타고니아는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수익이 아니라 매출의 1%입니다. 이익이 나든 나지 않든 그 약속은 지켜졌고, 지금까지 전 세계 환경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1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15년간 매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며 미국 아웃도어 시장 2위로 올라선 것은 이 일관성이 쌓인 결과입니다.
두 브랜드에서 읽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피할까'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먼저 물었다는 것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 반대라는 입장을 광고로 선언했고,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경영의 모든 층위에 뿌리내렸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사회적 입장 표명이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 전략이 성공한 것은 그것이 '전략'이기 이전에 브랜드의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키가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 것은 하루아침에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이어져온 사회적 의제 광고의 맥락 위에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사지 말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해왔기 때문입니다. 진정성 없이 사회적 이슈를 차용하는 것, 즉 '워싱(Washing)'은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부릅니다.
이미지출처: KBS뉴스
한국 기업의 사회적 입장,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나이키와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한국 기업들은 사회적 이슈 앞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가.
국내 연구에서도 이 현상은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습니다. 해외에서 브랜드 액티비즘이 주요 마케팅 흐름으로 자리 잡는 동안, 국내 브랜드들은 여전히 이 영역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을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 소극성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깊이 분열된 정치적 지형 위에 서 있습니다. 어떤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는 순간, 반대편 소비자를 잃을 위험이 상존합니다. 대기업일수록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넓고, 정치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나이키처럼 특정 소비자층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전략은 국내 대형 브랜드에게는 훨씬 높은 위험을 수반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한국 기업들의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역사적·사회적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역사를 마케팅 소재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감수성,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진지하게 대면하는 태도 — 이 두 가지는 어떤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지킬 수 있는 기준입니다.
무신사가 7년간 조만호 대표 개인이 기념사업회 활동을 이어온 것은, 브랜드 액티비즘의 화려한 선언은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일관된 책임의 실천이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적 맥락에서 가능한 브랜드 액티비즘의 모습이 그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출처: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브랜드의 역사관이 곧 브랜드의 미래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의 질문이 선명해집니다. 브랜드는 역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마케팅 현장에서 역사는 종종 '소재'로 소비됩니다. 광복절에는 태극기가 등장하고, 어린이날에는 동심이 팔립니다. 역사적 인물, 사건, 기념일 이것들은 소비자의 감정에 접근하기 위한 효과적인 레퍼런스가 됩니다. 문제는 그 접근이 피상적일 때 발생합니다.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지 못한 채 이미지나 문구만을 차용할 때, 그 콘텐츠는 희화화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 민감도가 매우 높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이 사건들은 단순한 역사 교과서의 챕터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유가족이 있고, 당시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박종철 열사 사건을 마케팅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이토록 위험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역사적으로 부적절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키와 파타고니아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이슈와 역사를 브랜드가 다루는 방식이 단순히 '올바른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 브랜드 자산의 핵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 이슈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특정 소비자층을 잃는 대신 더 열렬한 지지자를 얻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이라는 가치를 경영의 모든 결정에 내재화함으로써 소비자가 제품이 아닌 철학을 사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게 이 전략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시장 구조도, 정치적 지형도, 소비자 기대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원칙 하나는 있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쓰려면 그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잘못했을 때 그 무게를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 최소한의 기준 위에서 브랜드는 신뢰를 쌓습니다.
참고이미지
우리가 브랜드에게 묻는 것
이 이야기가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브랜드와 관계를 맺습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신고 나가는 신발, 입는 옷, 쓰는 앱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느냐와 연결됩니다.
기업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못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이것들은 브랜드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소비자가 이것을 의식하든 아니든, 그 지표들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 혹은 불신으로 축적됩니다.
나이키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광고를 내걸었을 때, 그 신발을 사는 행위는 단순히 운동화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재킷을 사는 것이 단순히 아웃도어 의류를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소비자는 이제 제품을 사는 동시에 그 브랜드가 대변하는 세계관을 구매합니다.
무신사 사과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충분하다', '부족하다', '너무 늦었다', '그래도 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어떤 판단도 틀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업의 이런 행동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하고, 사람이 소비합니다. 그 브랜드가 역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 브랜드 안의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의 반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브랜드를 선택하느냐 아니냐는, 우리가 그런 시선을 지지하느냐 아니냐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7년 전의 잘못을 지금 다시 사과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뒤늦은 행동처럼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진정성의 증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 시선이 모두 맞을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복잡함 속에 있습니다.
Editor's Note
이번 무신사 사과문을 보면서, 에디터는 '사과의 구조'보다 '사과의 타이밍'에 더 오래 시선을 두었습니다. 무신사는 잘못했고, 사과했고, 7년간 조용히 자신의 다짐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재사과를 촉발한 것은 내부의 자성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이었습니다. 대통령의 SNS 게시물이 없었다면, 이 사과문은 존재했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압력이든 내부 반성이든 — 결국 이 기업은 불편한 선택을 했습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불씨를 끄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전략'이었더라도, 전략적 선택이 옳은 방향일 때는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대응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스타벅스는 대표를 즉각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정용진 회장 본인의 과거 유사 언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신사는 7년간의 행동이라는 맥락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과에 일정한 무게를 부여했습니다.
나이키와 파타고니아는 우리에게 브랜드 신뢰가 어떻게 쌓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위기의 순간이 아닌 평상시의 일관된 행동이 그 토대가 됩니다. 무신사가 7년간 기념사업회와 관계를 이어온 것은 화려한 선언이 아니었지만, 그 조용한 실천이 오늘 이 사과문이 단순한 위기관리 문서로 읽히지 않게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브랜드 신뢰는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평상시의 축적으로 결정됩니다. 한국 기업들이 브랜드 액티비즘의 본격적인 언어를 갖추기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조용하고 지속적인 책임의 실천일 것입니다.
출처
- MBC 뉴스, 「무신사, 박종철 열사 고문 연상 광고 논란에 재차 사과」, 2026.05.20
- SBS 뉴스, 「무신사, '박종철 열사 고문 연상' 광고 논란 재차 사과」, 2026.05.20
- 이데일리, 「"7년 전 과오, 잊지 않겠다"…무신사, 박종철 열사 비하 논란 사과」, 2026.05.20
- 파이낸셜뉴스, 「李 "사람 탈 쓰고 이럴 수 있나"…무신사 '박종철 열사 조롱' 논란 재소환」, 2026.05.20
- YTN, 「李 대통령 저격에...무신사, '탁 치니 억' 광고 논란 재차 사과」, 2026.05.20
- ZDNet Korea, 「李 대통령,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비판」, 2026.05.20
- MBC 뉴스, 「'518 탱크데이' 논란에 정용진 대국민 사과」, 2026.05.19
- 이투데이, 「'책상을 탁' 7년 전 마케팅 논란 소환...무신사 "다시 한 번 깊이 사과"」, 2026.05.20
- 소비자평가, 「환경을 위한 진정성, 파타고니아의 지속 가능 경영」, 2025.02.03
- 아시아경제, 「"사지 말라"는 광고로 매출 40% 급증…브랜딩은 '파타고니아'처럼」, 2019.04.24
- 뉴데일리, 「나이키 '캐퍼닉' 효과 '톡톡'… 논란 속, 매출 성장 한몫」, 2018.09.11
- The PR 더피알, 「나이키가 한국에서 브랜드 액티비즘 하는 방식」, 2021.06.02
- 무신사 공식 사과문, 2026.05.20
#엔엑스스퀘어 #엔엑스매거진 #인사이트 #무신사 #무신사사과 #브랜드위기관리 #기업사과문 #역사인식 #마케팅논란 #박종철열사 #스타벅스탱크데이 #브랜드액티비즘 #브랜드신뢰 #나이키마케팅 #파타고니아 #무신사책상에탁
2026년 5월 20일, 무신사가 다시 공식 사과문을 냈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건 2019년이었습니다. 이미 세 차례 공식 사과를 했고, 대표가 직접 유가족을 찾아갔으며, 전 직원 역사 교육까지 진행했습니다. 이쯤이면 충분히 마무리된 사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무신사는 왜 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개를 숙였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려면 오늘 이 사과가 어떤 맥락 위에서 쓰였는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이미지출처: 스타벅스 (스타벅스 탱크데이)
불씨는 다른 곳에서 왔다
이 사과문이 나오기 이틀 전인 2026년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그 홍보물에 담긴 문구였습니다. '탱크데이', '책상에 탁!' —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계엄군의 탱크를 연상시키는 이름과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경찰의 해명("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 판촉 행사에 버젓이 등장한 것입니다.
여론은 즉각 들끓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에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사태 당일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를 전격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하지만 불매 움직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터진 직후, 대통령은 무신사의 2019년 양말 광고 이미지를 엑스(X)에 공유했습니다. 광고 속 문구는 '속건성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박종철 열사 사건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이미 받은 바 있는 그 광고였습니다. 대통령은 "사실이라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고 덧붙였습니다.
7년 전 덮어뒀다고 생각했던 불씨가, 다른 기업의 실수로 인해 다시 타오른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이 현재로 귀환하는 방식
디지털 환경에서 인터넷은 망각하지 않습니다. 어딘가의 서버에, 누군가의 스크린샷 폴더에, 혹은 커뮤니티의 아카이브에 잘못은 지워지지 않고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감수성이 예민하게 살아있는 순간, 잠든 것들은 다시 깨어납니다.
이번처럼 유사한 맥락의 사건이 터졌을 때 과거의 사례가 소환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소비자의 기억은 단선적이지 않습니다. 비슷한 감정의 결이 자극되면, 뇌는 연관된 기억을 끌어올립니다. 스타벅스의 '책상에 탁'이 무신사의 '책상을 탁쳤더니'를 소환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두 문장은 같은 역사적 사건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신사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을 겁니다. 이미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도 세웠는데, 다른 기업의 실수로 인해 자신들의 과거가 다시 조명되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나 이 지점에서 무신사가 선택한 방식이 중요합니다. 침묵하거나, "이미 사과했다"고 방어하거나, 혹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거나 세 가지 선택지 중 무신사는 마지막을 택했습니다.
기업의 역사 감수성은 왜 이렇게 자꾸 실패하는가
스타벅스의 '탱크데이'와 무신사의 '탁쳤더니 억하고'. 두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실수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같은 곳에서 자랍니다. 마케팅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을 감지하는 감수성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이는 단순히 특정 직원의 무지나 부주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케팅이라는 영역이 구조적으로 속도와 자극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눈에 띄게' 이 두 기준이 콘텐츠 제작의 핵심 축을 이루는 환경에서, '이 문구가 어떤 역사적 사건을 연상시키지는 않는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립니다.
더구나 현대의 마케팅 팀은 수십 개의 채널을 동시에 운영합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쇼츠, 카카오톡 채널, 뉴스레터, 오프라인 광고물 각 채널마다 다른 콘텐츠가 매일같이 쏟아져야 합니다. 이 속도전 안에서 역사적 감수성을 모든 산출물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은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무신사가 이번 사과문에서 '다중 검수 체계'를 언급한 것은 그래서 주목할 만합니다.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면, 2019년 이후 무신사에서는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7년간 무신사는 이 부분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습니다.
사과 대신 먼저 입장을 내세운 브랜드들 — 해외의 다른 선택
한국 기업들이 역사적 실수 앞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논란이 생기면 침묵하거나, 압력이 가중되면 사과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어 전략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수동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해외에서는 조금 다른 방정식이 작동해 왔습니다. 브랜드가 사회적 이슈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입장을 가지는 방식입니다. '브랜드 액티비즘(Brand Activism)'이라 불리는 이 흐름은, 기업이 사회적·정치적·역사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내고 그 메시지를 행동으로 뒷받침하는 전략입니다.
나이키의 2018년 캠페인은 이 흐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에 저항해 NFL 경기 전 국가 제창 시 기립을 거부하며 무릎을 꿇은 선수 콜린 캐퍼닉을 'Just Do It' 30주년 광고의 메인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할지라도 무언가를 믿어라"는 문구와 함께였습니다. 나이키 제품을 불태우는 영상이 #boycottnike 해시태그와 함께 퍼져나갔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분명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광고 공개 후 나이키의 온라인 매출은 단기간에 급등했고, 젊은 소비자층의 지지를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에이스 메트릭스의 당시 조사에 따르면, 광고를 본 젊은 세대 소비자의 56%가 나이키에서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응답했습니다. 나이키는 이미 이전 캠페인에서도 에이즈, 성불평등, 장애 등 민감한 사회적 의제를 광고에 담아온 브랜드였습니다. 이번 선택 역시 그 일관된 흐름의 연장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와 광고 메시지가 서로를 지지했기 때문에, 그 확신이 소비자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된 것입니다.
파타고니아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을 증명했습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 모든 브랜드가 '사라, 사라, 더 사라'를 외치던 그 날 뉴욕타임즈 전면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를 실었습니다.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쇼핑 시즌 자체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결과는 역설적이게도 매출 40% 급증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이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철학을 구매한 것입니다. 파타고니아는 1985년부터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해왔습니다. 수익이 아니라 매출의 1%입니다. 이익이 나든 나지 않든 그 약속은 지켜졌고, 지금까지 전 세계 환경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1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15년간 매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며 미국 아웃도어 시장 2위로 올라선 것은 이 일관성이 쌓인 결과입니다.
두 브랜드에서 읽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적 이슈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피할까'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를 먼저 물었다는 것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 반대라는 입장을 광고로 선언했고, 파타고니아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경영의 모든 층위에 뿌리내렸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 사회적 입장 표명이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 전략이 성공한 것은 그것이 '전략'이기 이전에 브랜드의 진심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키가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쓴 것은 하루아침에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2011년부터 이어져온 사회적 의제 광고의 맥락 위에 있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사지 말라"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간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해왔기 때문입니다. 진정성 없이 사회적 이슈를 차용하는 것, 즉 '워싱(Washing)'은 오히려 더 큰 역풍을 부릅니다.
한국 기업의 사회적 입장, 왜 이렇게 조용한가
나이키와 파타고니아의 사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왜 한국 기업들은 사회적 이슈 앞에서 상대적으로 조용한가.
국내 연구에서도 이 현상은 지속적으로 관찰되어 왔습니다. 해외에서 브랜드 액티비즘이 주요 마케팅 흐름으로 자리 잡는 동안, 국내 브랜드들은 여전히 이 영역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습니다.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냈을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다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 소극성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으로 깊이 분열된 정치적 지형 위에 서 있습니다. 어떤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는 순간, 반대편 소비자를 잃을 위험이 상존합니다. 대기업일수록 고려해야 할 이해관계자가 넓고, 정치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나이키처럼 특정 소비자층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전략은 국내 대형 브랜드에게는 훨씬 높은 위험을 수반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한국 기업들의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단순히 "역사적·사회적 이슈에 입장을 표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역사를 마케팅 소재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감수성, 그리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진지하게 대면하는 태도 — 이 두 가지는 어떤 구조적 제약 속에서도 지킬 수 있는 기준입니다.
무신사가 7년간 조만호 대표 개인이 기념사업회 활동을 이어온 것은, 브랜드 액티비즘의 화려한 선언은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일관된 책임의 실천이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적 맥락에서 가능한 브랜드 액티비즘의 모습이 그 안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브랜드의 역사관이 곧 브랜드의 미래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하나의 질문이 선명해집니다. 브랜드는 역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마케팅 현장에서 역사는 종종 '소재'로 소비됩니다. 광복절에는 태극기가 등장하고, 어린이날에는 동심이 팔립니다. 역사적 인물, 사건, 기념일 이것들은 소비자의 감정에 접근하기 위한 효과적인 레퍼런스가 됩니다. 문제는 그 접근이 피상적일 때 발생합니다.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지 못한 채 이미지나 문구만을 차용할 때, 그 콘텐츠는 희화화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합니다.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 민감도가 매우 높습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이 사건들은 단순한 역사 교과서의 챕터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유가족이 있고, 당시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박종철 열사 사건을 마케팅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 이토록 위험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역사적으로 부적절한'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이키와 파타고니아의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이슈와 역사를 브랜드가 다루는 방식이 단순히 '올바른가 아닌가'의 문제를 넘어 브랜드 자산의 핵심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 이슈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특정 소비자층을 잃는 대신 더 열렬한 지지자를 얻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이라는 가치를 경영의 모든 결정에 내재화함으로써 소비자가 제품이 아닌 철학을 사는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에게 이 전략이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시장 구조도, 정치적 지형도, 소비자 기대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으로 적용 가능한 원칙 하나는 있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쓰려면 그것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잘못했을 때 그 무게를 회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 최소한의 기준 위에서 브랜드는 신뢰를 쌓습니다.
우리가 브랜드에게 묻는 것
이 이야기가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매일 수많은 브랜드와 관계를 맺습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신고 나가는 신발, 입는 옷, 쓰는 앱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느냐와 연결됩니다.
기업이 역사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못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 이것들은 브랜드가 어떤 가치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소비자가 이것을 의식하든 아니든, 그 지표들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 혹은 불신으로 축적됩니다.
나이키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광고를 내걸었을 때, 그 신발을 사는 행위는 단순히 운동화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재킷을 사는 것이 단순히 아웃도어 의류를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소비자는 이제 제품을 사는 동시에 그 브랜드가 대변하는 세계관을 구매합니다.
무신사 사과문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충분하다', '부족하다', '너무 늦었다', '그래도 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어떤 판단도 틀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업의 이런 행동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브랜드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운영하고, 사람이 소비합니다. 그 브랜드가 역사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그 브랜드 안의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의 반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브랜드를 선택하느냐 아니냐는, 우리가 그런 시선을 지지하느냐 아니냐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7년 전의 잘못을 지금 다시 사과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뒤늦은 행동처럼 보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진정성의 증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두 가지 시선이 모두 맞을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의 역사는 언제나 그런 복잡함 속에 있습니다.
Editor's Note
이번 무신사 사과문을 보면서, 에디터는 '사과의 구조'보다 '사과의 타이밍'에 더 오래 시선을 두었습니다. 무신사는 잘못했고, 사과했고, 7년간 조용히 자신의 다짐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재사과를 촉발한 것은 내부의 자성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이었습니다. 대통령의 SNS 게시물이 없었다면, 이 사과문은 존재했을까요.
그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압력이든 내부 반성이든 — 결국 이 기업은 불편한 선택을 했습니다.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불씨를 끄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이 '전략'이었더라도, 전략적 선택이 옳은 방향일 때는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대응과 비교하면 더욱 선명해집니다. 스타벅스는 대표를 즉각 해임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정용진 회장 본인의 과거 유사 언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무신사는 7년간의 행동이라는 맥락이 있었고, 그것이 이번 사과에 일정한 무게를 부여했습니다.
나이키와 파타고니아는 우리에게 브랜드 신뢰가 어떻게 쌓이는지를 보여줍니다. 위기의 순간이 아닌 평상시의 일관된 행동이 그 토대가 됩니다. 무신사가 7년간 기념사업회와 관계를 이어온 것은 화려한 선언이 아니었지만, 그 조용한 실천이 오늘 이 사과문이 단순한 위기관리 문서로 읽히지 않게 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브랜드 신뢰는 위기의 순간이 아니라 평상시의 축적으로 결정됩니다. 한국 기업들이 브랜드 액티비즘의 본격적인 언어를 갖추기 이전에, 먼저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런 조용하고 지속적인 책임의 실천일 것입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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