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브랜드가 살아남는 단 하나의 조건
밥 한 끼를 같이 먹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밥상 위에는 꽤 묵직한 것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에그이즈커밍의 나영석 PD,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 그리고 구글코리아의 윤구 사장. 업의 결이 조금씩 다른 세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나눈 대화는, 단순한 업계 수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미지출처: 리더스런치
콘텐츠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AI가 등장한 이후 창작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결국 어떤 질문 앞에 멈추는지. 그 대화는 단단하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이미지출처: 김선태 유튜브
유튜브는 '간판 없는 식당'이 아닙니다
나영석 PD는 TV에서 유튜브로 처음 넘어왔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3년 동안 헤맸다고. 유명한 연예인을 데려오면 조회수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고. 반짝하고 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숫자들. 그걸 두고 그는 '허수'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3년의 시행착오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꽤 선명했습니다.
유튜브란, "간판에 자기 얼굴을 박고 직접 요리하는 오너셰프 식당"이어야 한다는 것. TV가 대중의 입맛을 기준으로 메뉴를 짜는 플랫폼이라면, 유튜브는 반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 취향과 철학이 무엇인지를 먼저 분명히 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구조. 시청자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나를 찾아오는 시청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콘텐츠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브랜드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논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실패는 같은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이 콘텐츠가 바이럴 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 것. 하지만 나영석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 질문의 순서 자체가 이미 틀려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롱런하는 채널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질이 뛰어나거나 편집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소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그 채널만이 가진 정서와 문법이 분명한 것들이 살아남습니다. 나영석 PD가 강조한 건 '기술적 퀄리티'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출연진 사이의 케미스트리, 위로가 되는 순간, 함께 웃게 되는 맥락 이런 것들이 팬심이 되고, 팬심이 채널의 수명을 결정짓습니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오래된 명제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기능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 얼굴을 박은 식당을 차리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용기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편이 훨씬 안전해 보이니까요. 나영석의 3년은, 그 안전함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뽑는다는 것
신우석 감독은 채용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돌고래유괴단은 신입 위주로 뽑아서 내부에서 감독으로 키웁니다. 외부의 이미 완성된 인재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닌,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 기준이 흥미롭습니다.
기획안의 완성도나 연출 실력의 스펙이 아닙니다. 그가 찾는 건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려내기 위해 장문의 글쓰기, 그림 그리기, 독특한 논술 시험, 그리고 10명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면접을 거칩니다. 미친 척 연기하는 정상인을 걸러내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생각이 독창적인 사람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 채용 철학은 사실 크리에이티브 업계가 오랫동안 씨름해온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누구에게나 노출되지만,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어떻게 생각했는가'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는 과거의 아웃풋을 보여주지만, 다음에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다른 역량입니다. 신우석 감독이 설계한 채용 과정은, 그 보이지 않는 역량을 드러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마케터나 브랜드 기획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것은 곧 브랜딩의 핵심 물음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드는가'를 먼저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이 결국 더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 일관성은, 채용된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조직 전체의 언어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신우석 감독의 채용 철학은 단순히 인재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영석 PD도, 신우석 감독도, 외부 탑클래스 인재를 영입하는 대신 내부 인력에게 기회를 주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구글코리아 윤구 사장이 "대기업은 관료화 될 수 밖에 없고, 타성을 깨기 위해 외부 수혈을 택하기도 한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웃으며 공감했습니다.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다 아는 중소기업의 특성, 그리고 정에 이끌리는 의사결정. 이걸 스스로도 알면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조직 안에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그 불합리함을 감당할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후계자를 키운다는 것, 자신이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든다는 것
두 리더가 입을 모아 고백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후계 체제'**라는 것. 자신이 빠져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은 창업가 혹은 1세대 크리에이티브 리더들이 도달하는 공통된 과제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해야 회사가 굴러가고, 내 이름이 곧 브랜드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러다 조직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가 됩니다. 창업자 리스크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입니다.
나영석 PD는 그 지점에서 매우 솔직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크리에이터로서 내리막을 걷고 있거나, 문을 닫는 과정에 있다고.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성숙한 리더십의 언어입니다. '나'를 중심에서 내려놓고, 에그이즈커밍이라는 구조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과업이라고 말하는 것. 이것은 단순히 은퇴를 준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창작 에너지를 시스템으로 변환하려는 시도입니다.
브랜드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창업자의 철학이 아름다워도, 그것이 창업자 개인에게만 내장되어 있다면 그 브랜드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힙니다. 조직 안에 철학이 녹아들고, 그 철학이 언어와 프로세스와 채용 기준으로 내려앉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한 사람을 넘어서는 존재가 됩니다. 나영석 PD가 지금 하려는 일은, 어쩌면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신우석 감독은 아직 정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갈 길이 멀다고. 그리고 어떤 잡음이나 부정적 피드백이 있더라도 묵묵히 결과물로 증명하겠다는 말. 이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다른 단계의 이야기를 동시에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대화가 가진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이미지출처: 구글
AI는 이미 도구입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두려운 걸까요
이 대화에서 가장 뜨거운 지점은 역시 AI였습니다.
구글코리아 윤구 사장은 AI 툴의 발전이 콘텐츠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가의 장비나 대형 자본 없이도 개인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이것을 '크리에이터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는데, 어감과 달리 그 안에는 양날의 날이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은, 동시에 경쟁 장벽도 낮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면, 차별화는 어디서 오는가. 그 질문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부각됩니다.
신우석 감독은 처음에 AI에 반감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다 저예산 인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AI를 써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훨씬 효율적으로 펼치게 돕는 도구라는 것. 그리고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촬영 감독이 가진 구도와 조명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AI에게서도 전문적인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지금 AI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AI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AI를 써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AI의 아웃풋 품질은 사용자의 전문성에 비례한다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쓰는 AI와, 10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쓰는 AI의 결과물은 전혀 다릅니다. AI는 레버리지입니다. 올려놓은 것을 더 크게 만들어주지만, 올려놓을 게 없으면 레버리지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AI 전략 전문가들도 같은 경고를 합니다. AI는 전략을 대신하지 않는다, 전략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라고. 이 말을 브랜드와 마케팅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AI를 잘 쓰는 조직이 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는 조직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전략이 없는 곳에 도구를 아무리 쥐어줘도, 아웃풋은 공허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질문입니다
세 사람이 결국 도달한 지점은 하나였습니다. AI가 효율적으로 처리해줄 수 있는 것들 편집, 후반 작업, 반복적인 제작 업무, 대량 생성 그 영역에서는 AI가 이미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이 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결국 인간 크리에이터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AI가 제작의 수고를 가져가면 갈수록 인간의 창의적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만드는 능력이 평준화될수록, '왜 만드는가'와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는 더 강력한 차별점이 됩니다.
실제로 2026년 마케팅 트렌드를 분석한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크리에이터는 이제 스토리텔러이자 퍼포먼스 마케터이자 스토어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요. 기술이 경계를 허물수록, 역설적으로 그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시각을 가진 사람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영석 PD가 강조한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는 AI가 아직 닿지 못하는 영역에 있습니다. 왜 이 이야기가 지금 필요한지, 이것이 나와 무슨 관계인지, 이 순간의 온도가 무엇인지. 그 감각은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경험에서만 나옵니다. 기계는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인간은 삶을 통해 감각을 축적합니다. 그 차이가, 콘텐츠와 브랜드 이야기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합니다.
단순히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 인간 중심의 스토리텔링과 커뮤니티 구축이 브랜드 영향력과 장기적 관계를 견인할 핵심 요소라는 것은 이미 업계의 공통된 결론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대화는, 현장에서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브랜드가 되는 것의 차이
이 대담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이 모두 어떤 의미에서 '브랜드'라는 점입니다. 나영석 PD는 이름 자체가 콘텐츠의 보증서처럼 작동하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신우석 감독은 특정 미학과 연출 문법으로 업계에서 인식되는 감독입니다. 구글코리아는 플랫폼이자, 그 플랫폼 위에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생태계의 설계자입니다.
이 세 사람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브랜드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지속적인 선택의 누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것을 거절하는지, 어떤 사람을 뽑고 어떤 문화를 유지하는지, AI가 할 수 있는 것과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나누는지. 이 모든 선택들이 쌓여서 브랜드의 얼굴이 됩니다.
유튜브에서의 팬심은 그 선택의 누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보내는 신뢰입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 팬덤이 강력한 자산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광고비로 살 수 없는 종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라는 감각을 준 콘텐츠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브랜드의 옹호자가 됩니다. 크리에이터와 팬덤 사이의 유대감은 브랜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브랜드 마케팅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광고는 살 수 있지만 신뢰는 살 수 없습니다. 노출은 만들 수 있지만 팬심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영석 PD가 3년의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처럼, 결국 자신의 얼굴을 박고 일관되게 요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단단하게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Editor's Note
나영석, 신우석, 윤구. 이 세 사람의 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성공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각자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실패하고 수정하고 선택해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영석 PD는 유튜브에서 3년을 헤맸다고 했고, 신우석 감독은 AI에 반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구글 사장은 내부 수혈이냐 외부 수혈이냐의 문제에 답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오래 붙잡힌 말은 결국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인간의 질문이라는 것. AI가 제작의 수고를 덜어줄수록, 그 질문의 무게는 더 커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자기만의 언어로 답할 수 있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알고리즘의 시대를 살아남는 것들일 겁니다.
오너셰프 식당을 차리는 것은 용기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식당을 자신 없이도 돌아가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영석 PD가 말한 '마지막 과업'이 묵직하게 남습니다.
출처
- 구글코리아 공식 유튜브 채널, 〈리더스런치〉 대담 영상 (2026.05.07 공개)
- 이데일리, "나영석·신우석·구글 사장이 본 유튜브…AI가 팬덤과 브랜드를 잇다" (2026.05.07)
- 매드타임스, "2026년 크리에이터 마케팅, 주목해야 할 6가지 변화" (2026.02.14)
- 매드타임스, "2025 소셜 미디어 마케팅 트렌드, 비디오·AI 주류화·진짜 연결의 시대" (2025.12.29)
- 하이아웃풋클럽 블로그, "2026 메타 비즈니스 트렌드 — AI 시대의 마케팅 5대 트렌드와 전략" (2026.02.15)
#엔엑스스퀘어 #엔엑스매거진 #인사이트 #나영석 #크리에이터이코노미 #브랜드아이덴티티 #AI마케팅 #유튜브브랜딩 #콘텐츠마케팅 #스토리텔링 #크리에이터전략 #팬덤마케팅 #콘텐츠전략
AI 시대,
브랜드가 살아남는 단 하나의 조건
밥 한 끼를 같이 먹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밥상 위에는 꽤 묵직한 것들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에그이즈커밍의 나영석 PD,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 그리고 구글코리아의 윤구 사장. 업의 결이 조금씩 다른 세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나눈 대화는, 단순한 업계 수다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콘텐츠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AI가 등장한 이후 창작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그리고 한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결국 어떤 질문 앞에 멈추는지. 그 대화는 단단하게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유튜브는 '간판 없는 식당'이 아닙니다
나영석 PD는 TV에서 유튜브로 처음 넘어왔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3년 동안 헤맸다고. 유명한 연예인을 데려오면 조회수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고. 반짝하고 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숫자들. 그걸 두고 그는 '허수'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3년의 시행착오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꽤 선명했습니다.
유튜브란, "간판에 자기 얼굴을 박고 직접 요리하는 오너셰프 식당"이어야 한다는 것. TV가 대중의 입맛을 기준으로 메뉴를 짜는 플랫폼이라면, 유튜브는 반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 취향과 철학이 무엇인지를 먼저 분명히 하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구조. 시청자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나를 찾아오는 시청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콘텐츠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브랜드들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논하는 방식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실패는 같은 지점에서 일어납니다. '이 콘텐츠가 바이럴 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 것. 하지만 나영석의 논리를 따라가면, 그 질문의 순서 자체가 이미 틀려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롱런하는 채널들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질이 뛰어나거나 편집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소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그 채널만이 가진 정서와 문법이 분명한 것들이 살아남습니다. 나영석 PD가 강조한 건 '기술적 퀄리티'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출연진 사이의 케미스트리, 위로가 되는 순간, 함께 웃게 되는 맥락 이런 것들이 팬심이 되고, 팬심이 채널의 수명을 결정짓습니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오래된 명제이기도 합니다. 고객이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은 기능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 얼굴을 박은 식당을 차리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용기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편이 훨씬 안전해 보이니까요. 나영석의 3년은, 그 안전함이 사실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을 뽑는다는 것
신우석 감독은 채용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돌고래유괴단은 신입 위주로 뽑아서 내부에서 감독으로 키웁니다. 외부의 이미 완성된 인재를 데려오는 방식이 아닌,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선택 기준이 흥미롭습니다.
기획안의 완성도나 연출 실력의 스펙이 아닙니다. 그가 찾는 건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가려내기 위해 장문의 글쓰기, 그림 그리기, 독특한 논술 시험, 그리고 10명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면접을 거칩니다. 미친 척 연기하는 정상인을 걸러내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생각이 독창적인 사람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 채용 철학은 사실 크리에이티브 업계가 오랫동안 씨름해온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창의적인 결과물은 누구에게나 노출되지만, 그 결과물이 만들어지는 과정, 즉 '어떻게 생각했는가'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는 과거의 아웃풋을 보여주지만, 다음에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는 다른 역량입니다. 신우석 감독이 설계한 채용 과정은, 그 보이지 않는 역량을 드러내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마케터나 브랜드 기획자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것은 곧 브랜딩의 핵심 물음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왜 만드는가'를 먼저 설명할 수 있는 조직이 결국 더 일관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합니다. 그리고 그 일관성은, 채용된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조직 전체의 언어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신우석 감독의 채용 철학은 단순히 인재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나영석 PD도, 신우석 감독도, 외부 탑클래스 인재를 영입하는 대신 내부 인력에게 기회를 주는 구조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구글코리아 윤구 사장이 "대기업은 관료화 될 수 밖에 없고, 타성을 깨기 위해 외부 수혈을 택하기도 한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은 웃으며 공감했습니다.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다 아는 중소기업의 특성, 그리고 정에 이끌리는 의사결정. 이걸 스스로도 알면서 쉽게 바꾸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조직 안에서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그 불합리함을 감당할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후계자를 키운다는 것, 자신이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을 만든다는 것
두 리더가 입을 모아 고백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후계 체제'**라는 것. 자신이 빠져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것은 창업가 혹은 1세대 크리에이티브 리더들이 도달하는 공통된 과제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해야 회사가 굴러가고, 내 이름이 곧 브랜드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러다 조직이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가 됩니다. 창업자 리스크라는 표현이 있는 이유입니다.
나영석 PD는 그 지점에서 매우 솔직한 말을 했습니다. 자신은 크리에이터로서 내리막을 걷고 있거나, 문을 닫는 과정에 있다고. 겸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성숙한 리더십의 언어입니다. '나'를 중심에서 내려놓고, 에그이즈커밍이라는 구조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성공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 과업이라고 말하는 것. 이것은 단순히 은퇴를 준비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의 창작 에너지를 시스템으로 변환하려는 시도입니다.
브랜드의 관점에서도 이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창업자의 철학이 아름다워도, 그것이 창업자 개인에게만 내장되어 있다면 그 브랜드는 언젠가 한계에 부딪힙니다. 조직 안에 철학이 녹아들고, 그 철학이 언어와 프로세스와 채용 기준으로 내려앉을 때, 비로소 브랜드는 한 사람을 넘어서는 존재가 됩니다. 나영석 PD가 지금 하려는 일은, 어쩌면 바로 그것일지도 모릅니다.
반면 신우석 감독은 아직 정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갈 길이 멀다고. 그리고 어떤 잡음이나 부정적 피드백이 있더라도 묵묵히 결과물로 증명하겠다는 말. 이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 다른 단계의 이야기를 동시에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대화가 가진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AI는 이미 도구입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두려운 걸까요
이 대화에서 가장 뜨거운 지점은 역시 AI였습니다.
구글코리아 윤구 사장은 AI 툴의 발전이 콘텐츠 제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가의 장비나 대형 자본 없이도 개인이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이것을 '크리에이터의 민주화'라고 표현했는데, 어감과 달리 그 안에는 양날의 날이 있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는 것은, 동시에 경쟁 장벽도 낮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다면, 차별화는 어디서 오는가. 그 질문이 오히려 더 날카롭게 부각됩니다.
신우석 감독은 처음에 AI에 반감이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다 저예산 인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AI를 써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고.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창작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훨씬 효율적으로 펼치게 돕는 도구라는 것. 그리고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촬영 감독이 가진 구도와 조명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AI에게서도 전문적인 아웃풋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 지금 AI 담론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입니다. 많은 분들이 AI를 두려워하거나, 반대로 AI가 모든 걸 해결해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AI를 써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AI의 아웃풋 품질은 사용자의 전문성에 비례한다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쓰는 AI와, 10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쓰는 AI의 결과물은 전혀 다릅니다. AI는 레버리지입니다. 올려놓은 것을 더 크게 만들어주지만, 올려놓을 게 없으면 레버리지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AI 전략 전문가들도 같은 경고를 합니다. AI는 전략을 대신하지 않는다, 전략의 부재를 드러낼 뿐이라고. 이 말을 브랜드와 마케팅의 언어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AI를 잘 쓰는 조직이 되기 전에, 먼저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는 조직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전략이 없는 곳에 도구를 아무리 쥐어줘도, 아웃풋은 공허합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인간의 질문입니다
세 사람이 결국 도달한 지점은 하나였습니다. AI가 효율적으로 처리해줄 수 있는 것들 편집, 후반 작업, 반복적인 제작 업무, 대량 생성 그 영역에서는 AI가 이미 압도적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이 되도록 설계하는 일은 결국 인간 크리에이터의 몫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AI가 제작의 수고를 가져가면 갈수록 인간의 창의적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는 점입니다. 만드는 능력이 평준화될수록, '왜 만드는가'와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는 더 강력한 차별점이 됩니다.
실제로 2026년 마케팅 트렌드를 분석한 자료들은 공통적으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크리에이터는 이제 스토리텔러이자 퍼포먼스 마케터이자 스토어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고요. 기술이 경계를 허물수록, 역설적으로 그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언어와 시각을 가진 사람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나영석 PD가 강조한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는 AI가 아직 닿지 못하는 영역에 있습니다. 왜 이 이야기가 지금 필요한지, 이것이 나와 무슨 관계인지, 이 순간의 온도가 무엇인지. 그 감각은 세상을 살아온 사람의 경험에서만 나옵니다. 기계는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인간은 삶을 통해 감각을 축적합니다. 그 차이가, 콘텐츠와 브랜드 이야기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변수로 작동합니다.
단순히 많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 인간 중심의 스토리텔링과 커뮤니티 구축이 브랜드 영향력과 장기적 관계를 견인할 핵심 요소라는 것은 이미 업계의 공통된 결론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대화는, 현장에서 그것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것과 브랜드가 되는 것의 차이
이 대담에서 흥미로운 것은, 세 사람이 모두 어떤 의미에서 '브랜드'라는 점입니다. 나영석 PD는 이름 자체가 콘텐츠의 보증서처럼 작동하는 크리에이터입니다. 신우석 감독은 특정 미학과 연출 문법으로 업계에서 인식되는 감독입니다. 구글코리아는 플랫폼이자, 그 플랫폼 위에서 수많은 브랜드들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생태계의 설계자입니다.
이 세 사람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브랜드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지속적인 선택의 누적이라는 점입니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고 어떤 것을 거절하는지, 어떤 사람을 뽑고 어떤 문화를 유지하는지, AI가 할 수 있는 것과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을 어떻게 나누는지. 이 모든 선택들이 쌓여서 브랜드의 얼굴이 됩니다.
유튜브에서의 팬심은 그 선택의 누적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보내는 신뢰입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에서 팬덤이 강력한 자산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광고비로 살 수 없는 종류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이라도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라는 감각을 준 콘텐츠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단순한 시청자를 넘어 브랜드의 옹호자가 됩니다. 크리에이터와 팬덤 사이의 유대감은 브랜드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태도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브랜드 마케팅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광고는 살 수 있지만 신뢰는 살 수 없습니다. 노출은 만들 수 있지만 팬심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영석 PD가 3년의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처럼, 결국 자신의 얼굴을 박고 일관되게 요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가장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단단하게 살아남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Editor's Note
나영석, 신우석, 윤구. 이 세 사람의 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성공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각자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실패하고 수정하고 선택해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영석 PD는 유튜브에서 3년을 헤맸다고 했고, 신우석 감독은 AI에 반감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구글 사장은 내부 수혈이냐 외부 수혈이냐의 문제에 답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 가장 오래 붙잡힌 말은 결국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는 인간의 질문이라는 것. AI가 제작의 수고를 덜어줄수록, 그 질문의 무게는 더 커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자기만의 언어로 답할 수 있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가, 알고리즘의 시대를 살아남는 것들일 겁니다.
오너셰프 식당을 차리는 것은 용기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것은, 그 식당을 자신 없이도 돌아가게 만드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나영석 PD가 말한 '마지막 과업'이 묵직하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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